[감상] 기타를 든 소년

아시는 분들은 아시는 전설의 '키카이다 VS 이나즈맨'이라는 크로스오버 작품.

원래는 코믹판 이나즈맨에 단편 에피소드로써 인조인간 키카이다 코믹판 이후의 지로를 등장시켜 이나즈맨과 키카이다가 대결하는 스토리를 그린 작품이다. 이나즈맨은 인류를 멸망시키고 신세계를 설립하려고 하는 초능력 집단 '신인류제국'에 맞서 싸우는 초능력자 카제타 사부로우가 변신하는 히어로로, '번데기에서 나비로'라는 이미지에 맞춰 변신시 번데기에 속하는 사나기맨에서 성체에 해당하는 이나즈맨으로 변신하는 '중간변신단계'라는 획기적인 개념이 특징인 히어로이다.
(이 개념은 이후 '가면라이더 BLACK', '가면라이더 쿠우가'등의 작품들에 자주 도입되었다.)

원작에서는 1부와 2부 사이의 단편 에피소드로 '히어로 대 히어로의 대결'이라는 흥미끄는 소재로써 다루어진 것이나, 역시 각 만화의 주인공이 서로 싸워야 하는 시추에이션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니만큼 그렇게 납득갈만한 스토리라고는 말하기 힘들다.

코믹판 키카이다에서 몸에 복종회로를 삽입당해 악에 따르도록 복종당하는, 그러면서도 제거되지 못한 양심회로때문에 그 복종을 거부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그 중간에 끼어 영원히 고뇌하고 괴로워하며 살지 않으면 안되는 운명을 갖게 된 지로. 그가 자신과 자신의 형제들을 제멋대로 갖고 논 인간들에 대해 원한을 품게 되어 마침 현인류를 말살하려고 하는 신인류제국을 도와 그들의 최대 방해꾼인 이나즈맨을 노린다,는 것이 코믹판 '기타를 든 소년'의 스토리이다.

간략한 줄거리만 보면 알겠지만 이나즈맨의 에피소드이니만큼 어디까지나 주인공은 이나즈맨이고 지로는 이나즈맨을 죽이려 덤비다 오히려 이나즈맨의 도움을 받는 역할로 되어 있다. 물론 코믹 자체가 이나즈맨이니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여기서 정말 납득할 수 없는 것이 두가지 존재한다.

하나는 복종회로의 악에 대한 명령조차 거부할 정도로 양심회로를 성장시켰던 지로가 그 후 곧바로 인간에 대한 불신과 증오로 가득찬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 '인조인간 키카이다'에서 그를 하나의 '인간과 동일한 존재'로까지 성장시켰던 수많은 추억과 사랑은 '기타를 든 소년' 에피소드에서는 전혀 없었던 것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또 하나는 그 모든 잘못을 복종회로의 탓으로 돌리고 이나즈맨이 복종회로를 제거해준 것이다. 지로에게는 오히려 잘 된 일이겠지만, 극중으로 따져서 복종회로의 삽입은 지로를 '진정한 인간'으로써 만들어 준 하나의 요소인 것이다. 악의 명령, 즉 악의 유혹에 계속 시달리면서도 양심에 의해 그 유혹을 뿌리치며 살아가야 하는, 인간과 동일한 존재가 된 지로는 이나즈맨의 친절(?)덕분에 다시 '양심회로가 붙은 기계'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물론 지로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을 계속 괴롭히는 요소를 제거해 준 고마운 행위겠지만, 그렇다면 이것은 양심회로가 없어서 선악구분도 없고 고민할 필요도 없이 살던 키카이더01이나 다른 다크 로봇들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개인적으로 이 에피소드의 완성도는 위에서 말한 이유때문에 그다지 높지 않게 보았고 그저 '팬들을 위한 서비스 편'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키카이더 01 애니메이션 DVD-BOX'가 나올 때 바로 이 '기타를 든 소년'편이 들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이러한 점들이 리터치되어서 각색되길 기대하고 있었다.



DVD 특전으로 새로 제작된 이 새로운 '기타를 든 소년'은 그러한 면에서 필자의 불만을 해소시켜준, 진정한 '기타를 든 소년'이라고 여긴다. 물론 키카이다와 이나즈맨이 싸우게 되는 동기 부여엔 좀 부족한 면이 있긴 하지만 복종회로를 장착당한 후 악에게 계속 유혹을 받는, 그리고 그 유혹을 완전히 뿌리칠 만큼 양심회로가 강하게 성장하진 못한 탓에 쉽게 악에게 유혹당하는 지로의 모습이, 그리고 그때마다 괴로워하는 양심을 잊기 위해 그 특유의 음파를 스스로 울리는 것이 '선과 악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약한 인간'의 모습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나즈맨이 내민 구원의 손길은 선악을 자신이 규정해서 그에 해당하는 회로를 태워버리는 행위가 아니라 스스로의 양심으로 악의 유혹을 이겨 내고 자기 자신을 되찾으라는 격려이다. 지로는 그 동안의 추억과 양심으로 계속되는 악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강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복종회로에서 직접 밀려오는 악에 대한 유혹. 그리고 그에 반하는 양심회로의 양심. 인간의 선악을 다 가지게 된 기계 지로는 확실히 복종회로가 심어진 그 시점에서는 방금 태어난 갓난아기와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OVA판 '기타를 든 소년'은 악에 유혹받기 쉬운 갓난아기 지로가 점점 하나의 양심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는 한 에피소드로 멋지게 각색된 편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by 천년용왕 | 2003/12/02 15:05 | 아니메가 맞아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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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잠본이 at 2003/12/07 06:37
역시 무라에다가 끼어든 보람이 있었군요. ;)
Commented by 천년용왕 at 2003/12/07 16:07
스탭을 확인해보니 무라에다 켄이치가 각본협력으로 들어갔군요. 설마 그 무라에다일줄은...
Commented by 잠본이 at 2003/12/09 11:49
잡지 등에서는 그점을 대폭 홍보해대고 있지요. 누룩타이푸라던가.
그나저나 콘노 나오유키씨 살아있는 동안에 되도록이면 석삼선생 작품을 많이 애니화해 주었으면 싶은데... 이 아저씨만큼 석삼 캐릭터를 부드럽게 움직여주는 사람은 못본지라 (게다가 원작에서 안나오는 부분까지 자기가 디자인해 버리는데 그게 전혀 어색하지 않아서 돌게 만드는... 사부로의 선글라스 벗은 얼굴 이라던가 그레이트의 젊은시절 이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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