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6월 24일
어쩌다 보게 된 블랙 코메디 하나.
링크 : ‘대운하’에 대한 단상
우리의 '독립신문'에도 실린 사설인데, 정말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크하하하.
막상 운하로 수송할 수 있는 양이 적더라도 고속도로의 부담을 줄일 수 있으면 도움이 된다고 하는 거나, (...차라리 고속도로를 넓힌다던가 철도를 좀 더 강화한다는 발상은 안 드나?) 운하를 통해 수자원을 항상 유지할 수 있다는 둥, (배 지나 가는 데 상시 물 채워 놔야 하는데 그게 쓸 수 있는 수자원이겠다...) 운하를 통해 정서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헛소리까지 뭐 그러려니 하는데.
최고의 명문(?)은 바로 맨 마지막. 너무 어지러워 눈물이 다 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댁은 풍류를 즐기기 위해
대체 얼마가 들 지 계산도 안되는 운하를
파고서 여유를 만끽하자 이거죠...?
그 무슨 수 양제 마인드?
...오죽 변호해줄 방법이 없으면 저런 식으로 변호해 줄 수 밖에 없는가... 하는 생각도 들어 참 애처롭긴 합니다.
우리의 '독립신문'에도 실린 사설인데, 정말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크하하하.
막상 운하로 수송할 수 있는 양이 적더라도 고속도로의 부담을 줄일 수 있으면 도움이 된다고 하는 거나, (...차라리 고속도로를 넓힌다던가 철도를 좀 더 강화한다는 발상은 안 드나?) 운하를 통해 수자원을 항상 유지할 수 있다는 둥, (배 지나 가는 데 상시 물 채워 놔야 하는데 그게 쓸 수 있는 수자원이겠다...) 운하를 통해 정서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헛소리까지 뭐 그러려니 하는데.
최고의 명문(?)은 바로 맨 마지막. 너무 어지러워 눈물이 다 나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번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이 있다. 운하의 건설은 국민적 선택의 문제이지 과학적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계산해서는 도저히 정당화할 수 없는 명품을 가지는 것은 그것이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라 그에 부수되는 다른 가치에 더 큰 비중을 두기 때문이다. 운하를 단지 다른 한 수송로로서 다룬다거나 또는 건설비용대 이익의 차원에서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단견이다. 사회적 효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판단할 문제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 필수품보다는 사치품에 더 큰 가치를 두게 되듯이 사회가 발전하게 되면 단지 필수기능에만 비중을 두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부수적인 미적 가치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선택할 수도 있다. 가난한 시절에는 단지 비와 눈만 피할 수 있다면 훌륭한 집이지만 소득이 높아지면 정원에 나무도 심고 잔디도 깔고 화단에 꽃도 피우게 되는 법이다. 이것은 낭비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운하도 그런 차원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대체 얼마가 들 지 계산도 안되는 운하를
파고서 여유를 만끽하자 이거죠...?
그 무슨 수 양제 마인드?
...오죽 변호해줄 방법이 없으면 저런 식으로 변호해 줄 수 밖에 없는가... 하는 생각도 들어 참 애처롭긴 합니다.
# by | 2007/06/24 23:08 | 넋두리 타임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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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딱 수양제가 생각나는 글입니다. 이쯤되면 그냥 닥치고 인정해줄 수밖에 없는 또라이라고 밖에는 할말이 없습니다.....orz
NOT DiGITAL
그런 차원에서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냥 운하 삽질(?)할 돈으로 나무 심고 잔디 깔고 화단 만들면 되잖습니까? ^^
그게 풍류란 거지요.
(남의 돈을 써서 하는건 풍류가 아닙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