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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나이트 실사전대 특촬레인져



조커의, 조커에 의한, 조커를 위한 영화.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누구든 이러한 평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히스 레저의 연기력 만의 문제가 아니라 극본부터 영화 연출 등, 영화의 모든 요소가 이 영화는 배트맨이 아니라 조커라는 타이틀을 붙여도 무방하다고 외치고 있다.

다크 나이트의 조커라는 사이코 패스 범죄자는 이제까지의 조커와는 또 다른 캐릭터이다. 그가 순수하게 범죄나 혼돈, 패닉을 사랑한다는 점, 배트맨과 "노는" 것을 이 세상의 둘도 없는 쾌락으로 여기고 그에 탐닉한다는 것에 대한 묘사는 어쩌면 원작의 조커에 가장 접근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의 조커에는 다른 조커에서 볼 수 없는 전혀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 그것은 광기도 혼돈도 범죄도 아니고 어쩌면 하나의 주의, 혹은 사상이다.



영화가 시작하고 나서 가면을 벗고 처음으로 화면 앞에 조커로써의 얼굴을 내밀며 하는 말.
"내가 믿는 건 말야, 사람이라는 건 극단으로 몰고 가면 맛 간다는 사실이지."
이 한마디야 말로 조커가 믿는 하나의 진리이고, 조커가 추구하는 진실이기도 하다.

긴급회피. 카르네아데스의 판자.
내가 살기 위해서는 옆의 사람이 죽어야 하고, 옆의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내가 죽어야 하는 상황.
다크 나이트의 조커는 철저히 카르네아데스의 판자를 고담시 전체에 강요하고 있다. 누군가를 희생해서 목숨을 구해라.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라.
조커의 폭력은 여기서는 마치 자연 재앙과도 같다. 그 누구도 - 심지어는 배트맨조차 - 사전에 막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고, 예고한 것은 반드시 일어난다. 고담의 경찰력과 배트맨의 능력, 웨인의 경제력으로도 조커의 폭력은 절대 막지 못한다. 이는 고담시 전체에게 긴급회피 상황을 인식시키는 가장 큰 이유다. 극 중 조커의 잔인성과 돌발성은 오직 '조커는 막을 수 없다'라는 것을 모두에게 인식시켜주기 위한 요소로밖에 쓰이지 않는다. 조커가 만든 극한 상황은 막을 수 없기에 휘말린 사람들은 나 아니면 너, 그 아니면 그녀 등의 잔인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법률과 사회 규범적으로 긴급회피에는 죄악을 묻지 않는다. 그러나 조커가 원하는 것은 그러한 위로가 아니다. 잔인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 역시 '망가지는' 것을 즐기는 것이 목적이기에 거기에 반드시 하나 둘씩 추가하는 요소가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조커에 굴복하고 망가지기 시작한다.
조커에 의해 망가진 하비 덴트가 투페이스로써 고든 청장의 가족을 인질로 잡으며 아내와 아들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외치는 장면은 조커의 이상이 실현된 것이다. 잔인한 선택을 강요당하는 상황에서 어느 선택이건 절대 후회할 수 밖에 없는 경우. 그 순간의 광기를 실현하려는 것이 조커의 의도이자 이상이었다. 내가 이 영화의 테마를 '잔인한 선택'이라고 여기는 것은 긴급 회피 상황의 연속과 그에 따라 한 쪽을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고통이 영화 전체에 흐르기 때문이다.


다크 나이트는 'if'를 생각할 여지가 매우 많은 영화이다. 조커의 탄생 비화라던가 출신에 대한 것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점이 그 예중 하나이다. 극 중 조커는 자신의 입이 찢어진 이유를 각각 다르게 얘기한다. 미친 아버지가 찢었다는 둥, 마누라를 위해 찢었다는 둥... 아마도 자기가 나불댄 이유 중 진짜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크 나이트판 조커의 탄생에 '긴급 회피' 상황이 관련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본다. 그의 광기의 원인으로 긴급 회피 상황이 관련되었고, 그것에 강한 집착을 보여주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if의 상상을 즐기게 된다. 후반에 시민이 탄 배와 죄수들이 탄 배들의 상황 역시 상상의 즐거움을 주는 점이다. 만약 거기서 한 쪽이 먼저 눌렀다면 실제로 터지는 쪽은 어느 쪽이었을까. 자기가 터지는 쪽과 상대방이 터지는 쪽, 어느 쪽이 조커에게 있어서 더 즐거웠을까 라는 상상도 가능하다. 나는 마지막에 하비 덴트의 모든 죄를 배트맨이 뒤집어 쓰는 장면에서 그것조차 조커가 꾸민 배트맨이나 고담시에게의 '잔인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한다. 하비 덴트를 범죄자로 만들겠는가, 아니면 배트맨을 범죄자로 만들겠는가라는 문제를 고담 경찰과 배트맨에게 주고서 정신병원에서 낄낄대고 있는 조커를 상상한다.

이 영화는 배트맨을 소재로 가져 왔지만, 코믹 원작의 수퍼 히어로물을 완전히 포기한 영화이다. 배트맨이 수퍼 빌런들을 상대로 용맹히 싸워 이기는 통쾌함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작품이 되었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커에게 농락당하기만 하는 무력한 모습이 강조되고 있다. 수퍼 히어로물이나 액션물을 생각하고 보는 사람들에게는 아쉬울 수 있겠다.
다만 나는 이렇게 스토리로써 완성된 영화를 만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게 열렬한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또한 다크나이트 조커를 화면에 완벽히 재현시킨 고 히스 레저에게 역시 감사하였다. 마치 제 생명을 불살라 만든 조커이라는 평은 절대로 허풍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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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마근엄 2008/08/14 00:48 # 삭제 답글

    고백하거니와, 기폭장치를 누른 쪽이 날라가버리는 장면을 기대한 1人입니다.
  • 나빠 2008/08/16 22:53 # 삭제 답글

    극장에서 두번 봤습니다. 두번째 보니까
    조커의 행위에 대한 논리적 타당성이 딱딱 맞아 떨어져서
    처음에 보지 못했던 다른 재미가 있어 즐거웠습니다.

    그러니까 잘 보면, 영화 처음에 가면들고 서 있다가
    은행털러 가는 차에 올라타는 남자가 바로 조커입니다.
  • 잠본이 2008/09/09 20:56 # 답글

    뱃맨 영화라기보다는 놀란표 웰메이드 스릴러에 더 가깝더군요.
    사람들이 열광하는 건 아마 그래서가 아닐까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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